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가야마 노리오 (문단 편집) === 사형 집행 === [[1997년]] 8월 1일, 48세의 나이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사형을 놓고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이 미성년자로 범죄에 비해 낮은 형량을 받게 되자 많은 비판이 일게 되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나가야마를 사형 집행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최고재판소에서 제시한 '같은 환경에서 자란 다른 형제들은 잘 자라 적절한 성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환경적 특수성을 감안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까지 간 사람은 나가야마 노리오 한 명뿐이라지만 실제 그의 형제들의 삶은 여러모로 적절한 성인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며 상당히 불우하고 비참했다. 당시 그의 큰 형은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다 결국 [[사기죄]]로 [[구속]]되어 복역 중이었고 둘째 형은 [[일용직]]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다 완전히 [[행방불명]]되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으며 막내 여동생은 [[정신질환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사형 집행 당일, 나가야마 노리오의 작품의 팬들이 사형 집행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집행되었다. 노리오는 평소 접견을 온 자신의 지인들에게 사형이 집행된다면 격렬히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는데 교도관 등 입회자 여럿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그 말대로 맞은 편 동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절규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하게 저항했다고 한다. 유해는 구치소에서 곧바로 화장되었는데 인수자가 있을 경우 시신을 보여주고 외부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하여 장례를 먼저 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절차를 무시하고 구치소 내에서 곧바로 화장 처리한 것은 혹시 노리오의 난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폭행이 동반돼 [[골절]]상 등 공개할 수 없는 불미스러운 상처가 남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이후 그의 유골을 인수한 [[국선변호사]]의 주재로 장례가 치러졌고 전 아내가 그의 고향 홋카이도에 접한 [[오호츠크 해]] 앞바다에 흩뿌렸다. 사후 변호사들에 의해 나가야마 어린이 기금이 창설되었고, 그의 작품으로 거둔 인세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